국제 유동성이 감소하며 신흥국 통화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예상보다 빠르게 돈줄을 조이면서, 미 달러의 가치가 2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글로벌 긴축 강화 추세 속에서 달러 부채가 많은 신흥국이 '데킬라 위기(1994년 멕시코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달러 강세 속 신흥국 통화가치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신흥국 통화 25개로 구성된 MSCI 신흥국 통화지수는 5월 10일(현지시간) 1672.62로 나타났다. 4월 초(4일 종가 1746.64)와 비교하면 한 달 사이 4.2% 하락했다.
신흥국 통화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은 Fed의 공격적인 통화 긴축 때문이다. Fed는 지난 5월 4일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은 데 이어 올해 두세 차례 추가 빅스텝을 예고했다.미국이 오는 6월과 7월 연이어 빅스텝을 추진하고, 남은 회의(9·11·12월) 때마다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다면 연말 금리 상단은 연 2.75%에 이른다. 연초 제로(연 0~0.25%) 수준이었던 미국 기준금리가 1년 만에 연 3%(상단기준) 선에 바짝 다가서는 것이다./미국 금리가 치솟으면 기초 체력이 약한 신흥국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저금리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흥국으로 향했던 글로벌 자금의 이탈이 본격화해서다. 특히 달러 빚이 많은 신흥 시장은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급락(환율 상승)하며 빚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장기화하는 중국의 코로나 봉쇄도 신흥국 경제에는 악재다. 세계의 공장이자 수출 시장인 중국이 멈춰 서면 공급망 병목 현상이 커지면서 수입 물품의 가격 등이 오를 수 있고, 신흥국의 대중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계속되는 미국의 긴축에 대응하기 위해 신흥국도 앞다퉈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고,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5월 4일 브라질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2.75%로 단숨에 1%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3월(연 2.75%) 0.75%포인트 금리를 올린 이후 10차례 연속 인상이다./인도도 이날 기준금리인 정책 레포금리를 4%에서 4.4%로 0.4%포인트 올렸다. 2018년 8월 이후 첫인상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기준금리(47%)를 2.5%포인트나 올렸다. 올해 들어 4번째 인상에 나선 것이다.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일부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폭락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인도 루피화는 지난 9일(현지시간) 처음으로 달러당 77루피 선을 뚫고 77.350루피까지 내려앉았다. 역대 최저 수준이다.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는 5월 10일(현지시간) 달러당 116.93페소를 기록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20년 초(달러당 59.87페소)보다 2배 가까이 하락했다.
우리나라 원화가치도 강달러 흐름 속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5월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보다 1.1원 오른 달러당 1275.3원에 마감했다. 하지만 장중에는 2020년 3월 이후 최저치인 1280.2원까지 가치가 급락했다.
상당수 전문가는 신흥국이 연쇄적으로 흔들리던 지난 1994년 멕시코의 ‘데킬라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시 도화선도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었다. Fed는 1994년 2월부터 1년 만에 6차례에 걸쳐 금리를 연 3%에서 6%로 배로 끌어올렸다.
달러 강세에 따른 자금 이탈은 멕시코의 금융위기로 번졌고, 아르헨티나와 태국, 필리핀을 거쳐 한국까지 연쇄적으로 위험에 빠뜨렸다. 당시 이런 현상을 두고 ‘멕시코의 전통술 데킬라에 취한 거 같다’고 해 '데킬라 효과'로 불렀다.
KDI는 5월 12일 발표한 '대외 불확실성이 환율 및 자본유출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 환율 상승과 자본유출이 심화될 수 있다고 했다. 물가가 치솟으면 원화자산의 가치가 훼손돼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KDI는 대외적 신뢰도 제고 및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시기별로 대외 불확실성이 환율과 자본유출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정도는 다르지만,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물가 안정과 국가채무의 안정적 관리 등이 중요하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가파른 금리 상승세는 금융 불안정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에 따른 경기회복 둔화 우려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등 민가부채가 약 4,500조원이나 되고, 광의의 국가부채 D4가 2,500조원이나 되어 금리가 인상될 경우 이자부담도 상당히 클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경제는 대외건전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단기적으로 환율 및 자본유출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갑작스러운 금융시장의 불안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급격한 이탈이 예상되는 경우 외환건전성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운용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및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및 외환시장 접근성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경제주체는 금리인상시대 데킬라위기가 재현될지 계속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1) 중앙일보, 2022.5.12.
2). KDI, 대외 불확실성이 환율 및 자본유출입에 미치는 영향', 202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