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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월 영월 김삿갓유적지와 난고 김삿갓문학관 후기! [이춘근 강원여행 티스토리 1,119회]

여행정보(레오)88 2024. 2. 1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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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관령여행을 3박 4일 일정으로 여행하고 나서 영주 부석사를 가기 위해 영월을 거쳐 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영월에 있는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고씨동굴 등을 거쳐 김삿갓 유적지에 갔다.

김삿갓유적지는 난고 김삿갓의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백일장에서 조부를 욕되게 하는 시를 썼다는 자책감으로 평생 방랑 시인을 지낸 방랑시인 김삿갓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문학적 위상을 재조명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김삿갓유적지

 

▶ 김삿갓 묘역

김삿갓유적지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에 조성된 유적지이다. 김삿갓 연구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난고 문학관과 많은 돌탑이 조성된 묘, 작은 성황당, 마대산을 따라 김삿갓이 살던 집터 등이 있다.

이곳 노루목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가운데 있으며,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 및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 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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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삿갓 유적지 내에 흐르는 '곡동천'은 여름철에는 유리알처럼 맑고 풍부한 수량이 기암괴석 사이로 넘치고 가을에는 형언각색 단풍으로 인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한 곳이다. 이처럼 산자수려한 고산준령 풍운 속에 청운의 푸른 꿈을 접고 해학과 재치와 풍류로 한 세상을 살다간 조선 후기 방랑시인이자 천재시인인 김삿갓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난고 김병연 묘소와 주거지가 있는 곳이다.

난고 김삿갓은 원래 전라도 동복에서 객사하였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둘째 아들 익균이 주거지인 하동면(현 김삿갓면) 노루목 바로 이곳 골짜기에 묻어주었으며, 그의 묘소는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정암 박영국 선생의 노력으로 처음 발견되었다.

 

 

▣ 난고 김삿갓문학관 이용시간과 이용요금

1. 이용시간; 09:00-18:00

2. 휴관일; 매주 월요일

3. 이용요금; 성인 2천원, 초중고 1500원, 유치원 무료

 

난고김삿갓문학관은 강원도 시책 사업인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하나로 2003년 10월 개관했다. 김삿갓 선생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삿갓은 양반의 신분을 버리고 방랑하는 삶을 선택한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이다. 그는 한시漢詩의 전형적인 주제와 틀에서 벗어나 민중의 삶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자유로운 형식의 시를 썼던 천재시인이기도 하다.

김삿갓은 당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는 스스로 성姓만 말할 뿐 이름은 밝히지 않아 정체를 숨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삿갓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연유로 김삿갓金笠이라 불렀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1807~1863)으로 자子는 성심性深, 호號는 난고蘭皐이고 ‘립笠, 삿갓’은 방랑할 때 사용한 이름이다. 조선의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순조 11년(1811)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을 막지 못하고 항복하면서 집안이 몰락하자 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폐족자廢族子)이라는 멸시를 피해 어머니와 함께 영월 삼옥리에 정착하였다.

선생은 5세 때 선친 부사인 조부 익순이 홍경래 난 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고, 조모 전주 이씨는 광주의 관비로 축출되었으며, 부친은 남해로 귀향을 갔다. 선생은 형 병하와 함께 노복 김성수의 등에 업혀 황해도 곡산으로, 모친은 아기 병호를 데리고 여주 이천으로 피신하였다. 후일에 조부의 죄가 멸족에서 폐족으로 감형되어 형제는 모친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부친은 홧병으로 죽었고, 세인의 괄시와 천대가 심하자 모친은 가족을 이끌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선생은 비극적인 가족사를 모르고 자랐으며, 20세 때 한 살 연상인 장수 황 씨와 결혼하였다.

 

그 해 영월 동현에서 실시한 백일장에서 시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 에 대하여 가산 군수 정씨를 예찬하고 선천 부사이자 방어사이던 조부 김익순을 호되게 비판하는 글을 지어 장원을 하였다. 그러나 후일 모친으로부터 집안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에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어둔으로 옮겨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22세 때 아들 학균을 낳은 뒤 상경하여 이름으르 김란, 자를 이명, 호를 지상으로 바꾸고 안응수의 문객으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였다.

 

24세가 되던 해 권문에 기대어 출세하려는 생각을 단념하고 귀가하여 형 병하에게 아들 학균을 입양시키고 그해 차남 익균을 얻었지만 처자식을 남겨둔 채 방랑길에 올랐다. 그때부터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자책하며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고 다녔으므로 김삿갓 또는 김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 혼을 추모하고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산자수명한 김삿갓 계곡을 자연문화의 중심지, 문예인의 순례지, 김삿갓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의 시선으로 승화시켜 문화관광자원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1998년도부터 매년 10월 초에는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를'개최되고 있다.

김삿갓면은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면으로 명칭은 이전의 영월군 하동면에서 2009년 10월 20일 김삿갓면으로 변경되었다.

 

◐ 위치;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216-22번지. 연락처- 033-375-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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