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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부인사지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와 부인사 전경 후기! [이춘근 티스토리 1,161회]

여행정보(레오)88 2024. 4.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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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사지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 중턱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이고 대구시 기념물 제3호이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인 동구 지묘동 신숭겸 장군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서 부인사지를 방문하였다.

 

▶ 부인사 입구

▶ 부인사 대웅전

 

부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일컬어진다. 부인사는 고려시대에 대장경판의 봉안처로 유명하며, 문헌기록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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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권21, 세가(世家) 권53, 행지(行志),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명병서(彰聖寺眞覺國師大覺圓照塔碑銘幷序)」, 이규보의 「대장경판군신기고문(大藏經板君臣祈告文)」 등을 살펴보면, 부인사에 큰 홍수가 있었다는 사실, 부인사 승려들이 무신집권에 항의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사실, 부인사에 초조대장경판과 속장경판을 봉안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부인사지

 

▶ 왕벚나무 (보호수)

한편, 부인사는 불교가 흥왕하던 신라와 고려 때에는 약 2,000명의 승려가 수도하는 대사찰이었다. 초조대장경판은 몽골의 2차 침입 때 대부분 불타 없어졌지만, 일본 교토(京都)의 남선사(南禪寺)의 522종(種), 1,823권(卷), 1,712책(冊)을 포함 국내외에 약 2,000여 권이 전해지고 있다.

 

부인사의 대장경은 고종 19년(1232)에 몽고의 제2차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며, 이 때에 경주의 황룡사 목조9층탑도 함께 소실되었다.

 

현재의 부인사지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웅전터가 남아 있고, 그 남쪽으로 석등 1기와 배례석 1기가 있으며, 대웅전 터의 서쪽에는 쌍화사석등(雙火舍石燈) 1기가 서 있다. 그리고 대웅전 터의 남쪽 좌우로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는 3층석탑이 동서에 배치되었다.

3층석탑의 서탑은 초층, 2층 옥개석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제 위치에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동탑은 기단석 일부만 유존해 있다. 부인사지의 남쪽에는 창건 당시에 축조한 거대한 축대가 남아 있는데, 그 길이는 동서로 55m가 되며, 높이는 3∼4m이다.

축대에 사용된 석재는 100cm×150cm 내외의 방형, 장방 석재를 치석하여 상하층이 엇물리게 한 바른층쌓기 수법으로 축조하였다. 축대의 중앙에는 남쪽향으로 낮은 대지에 연결된 계단이 마련되었고, 남쪽으로 10m 위치에는 중문지가 위치하였는데, 중문지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현재 주초석이 남아 있다.

 

▶ 은적사지 안내간판

중문지에서 정남쪽으로 진입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진입도로의 좌측에 은통당(隱通堂)이란 글자가 음각된 팔각원당형 부도 1기와 석종형 부도 1기가 배치되었고, 남쪽으로 경판고지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유존해 있다./ 부인사지는 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 보호되고 있다.

 

부인사 입구에 역 20여대 주차 가능한 주차장이 있다. 내비에서 은적사를 검색해서 가면 된다.

 

◐ 위치; 대구 동구 팔공산로 967-28(신무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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