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에 연초부터 주주환원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권을 비롯해 제조업과 패션업계에서도 배당금 확대 및 자사주 소각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주주환원이 해외에 비하면 소극적이었던 탓에 주주들은 이 같은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다만 실적에 따라 들쭉날쭉한 배당 성향과 소액주주 홀대 관행 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번 주주환원 바람도 미풍(微風)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주주환원 바람을 불러일으킨 선두 주자 중 하나다. 지난달 발표한 주주환원 정책에 따라 이달 2월 3일 발행주식 수 1%에 해당하는 3,154억 원 상당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자사주 소각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보다 더 강력한 주주 친화책으로 꼽힌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식 총량이 줄어 주당 가치는 상승하기 때문에 주주들로서는 주가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지난달 25일 메리츠화재도 1,792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로부터 지배구조 개편 압박을 받은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향후 3년간 당기순이익의 20%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정책을 결의했다.
지난 2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일신방직의 본사 사무실에서 이 회사 소액주주 단체 대표단 5명과 경영관리 담당 임직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책상에 마주 앉았다. 주주들은 “주가 부양을 위해 최소한 450억 원어치 자사주를 매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회사 측은 “주주환원은 동의하지만, 금액이 너무 크다”라고 맞섰다. 일주일 뒤인 지난 2월 20일 일신방직 이사회는 “주주환원을 위해 200억 원의 자사주를 매입한다”라고 발표했다. 주주 단체가 거래 활성화를 위해 추가로 요구한 주식 액면분할도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사 주가는 하루 만에 약 11% 뛰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소액주주들이 뭉쳐 주주환원을 관철한 성공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들이 상장사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주주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증권가에서 '주식농부'로 알려진 큰손 주주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가 농심홀딩스 등 12개 상장사를 상대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을 제안했다. 2월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박 대표는 농심홀딩스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액면분할과 주당 4천 원 배당, 알짜 스타트업 인수 등을 요구했다. 배당 요구액은 농심홀딩스가 공시한 주당 배당금 2천500원의 1.6배 수준이다. 앞서 지난 2월 6일 농심홀딩스는 주당 2천500원, 모두 116억 원의 현금을 배당하겠다고 공시했다. 시가배당률은 3.7% 수준이다. 이 회사는 결산 배당을 2004년부터 주당 2천 원을 유지해오다가 이번에 2천500원으로 늘렸다. 농심홀딩스 액면가는 현재 5천 원이다.
최근 회사 경영 개입으로 주주 가치를 상승시키려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 등 굵직한 이슈를 이끌며 국내 자본시장 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전문 펀드가 아닌 일반 소액주주들도 “주주로서 내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외국계 사모펀드 출신 전문가가 이끄는 ‘선수’라면, ‘행동주의 개미’는 그야말로 일반인이다. 그간 대주주와 주요 기관 투자자들에 밀려 발언권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 장안의 화제인 행동주의 흐름을 타고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회사와 법정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2월 22일 손경준 씨를 비롯한 한국철강의 소액주주들은 법원에 “곧 열릴 주주총회에 ‘회사의 1,000억 원 자사주 매입’ 안건을 상정해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 2월 7일 회사에 자사주 매입, 현금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책을 요구하는 내용의 주주제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회사는 자사주 매입에 대해 “이사회 결정 사안”이라며 주총 상정을 거부했다. 그러자 주주들이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내는 것이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행동주의 개미’에 대해 “전문 펀드의 행동주의보다 더 어려운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통상 행동주의 펀드들은 경영권 장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나 대주주 지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회사를 대상으로 삼는다. 최대 주주 지분율이 압도적일 때 아무리 소액주주표를 끌어모으더라도 주총 표 대결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얼라인파트너스의 목표였던 SM엔터테인먼트도 최대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은 18%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장기 투자자가 주를 이루는 ‘행동주의 개미’들의 상대는 대부분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회사다. 일신방직이나 한국철강도 최대 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율이 50%대다. 주총에서 이기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소액주주들이 실질적인 협상보다는 ‘이목 끌기’를 위해 비현실적이거나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소액주주 권리에 대한 편익이 부족한 국내 시장에서, 회사 측과의 협상으로 성과를 얻어내는 주주 단체들이 나오는 것은 주주자본주의 차원에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실기업의 주가를 띄우기 위한 목적으로 과격한 단체 행동하는 소액주주 단체들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
주주환원 정책의 혜택이 실제 주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주환원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여전히 매입한 자사주를 주주 가치 제고가 아닌 경영권 보호 등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라면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조선경제, 관련 기사, 2023.2.22./ 동아일보, 관련 기사, 2023.2.8./ 한국경제, 관련 기사, 202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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