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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 모두 WTO 위배!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워--우리도 미래 성장주도산업 보조금 지원 검토해야! [이춘근 경제상식 티스토리 577회]

여행정보(레오)88 2022. 9.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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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각국의 보조금 지원은 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는 나쁜 행위로 생각돼 왔다. 국가가 개입해 산업 경쟁력을 왜곡하는 불공정한 행위로 규제됐다. 그러나 이제 보조금은 없애야 할 행위가 아니라, 필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혹은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활용하는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되고 있다. 미·중 대립과 공급망 위기 속에 반도체와 전기차 등 첨단기술 제품을 대상으로 각국의 보조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 중국과 미국 반도체 보조금 지원 경쟁

보조금 경쟁은 미국과 중국이 불을 댕겼다.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의 기치 아래 2025년까지 중국 반도체 수요의 70%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밀어붙였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쏟아부은 돈은 미화로 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반도체 분야의 경우, 2025년까지 자체 조달 비율을 7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과 기술 패권을 다투는 미국은 지난달 8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이 ‘칩(CHIPS)과 과학법’에 서명하면서 과감한 반도체 지원에 나섰다. 이 법에는 미국 내 반도체 개발 및 제조를 지원하기 위해 약 700억 달러에 달하는 펀드를 조성하고 25% 투자세액 공제 등 각종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도 있다./ 연방정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10년 동안 중국 등 이른바 ‘우려 국가’와 첨단 반도체 거래를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중국 내 기존 반도체 생산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이 주는 보조금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중국 사업을 조정할 것이냐 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를 내걸고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대기금이 투자 대상을 결정하면 지방정부와 각종 금융사와 민간 기업들까지 자금을 보태면서 수조억 원대 프로젝트가 조성됐다. 하지만 변변한 기술도 없이 정부 자금을 따내는 '먹튀'가 속출했다. 칭화유니그룹도 무리한 투자로 도산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국내 소비량 대비 생산량)은 16.7%에 그쳤다.

중국은 1기의 실패를 거울삼아 대기금 2기부터 투자 대상을 좁혔다. 대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인 중신궈지(SMIC)와 화훙, 장비업체인 베이팡화촹과 중웨이 등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1기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뒷받침하는 핵심 수단인 국가 반도체 펀드의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펀드에 대한 지도부의 분노가 거세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EU와 일본도 보조금 경쟁

일본과 유럽연합(EU)도 보조금 경쟁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까지 반도체 강국이던 일본은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2021년 약 68억 달러를 지원했다. 올해에는 미국과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한 공동 태스크포스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EU도 반도체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8월 초 공개된 EU 반도체 지원법안(EU Chips Act)에 따르면 EU는 ‘유럽 반도체 이니셔티브’(Chips for Europe Initiative)를 출범시켜 반도체 개발 및 생산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와 민간 자금 약 430억 유로를 투입해 반도체 개발에서 제조까지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 현재 10% 미만인 EU의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20% 이상으로 끌어 올린다는 것이 EU의 목표다.

 

미국은 한술 더 떠 국제규범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차별적인 전기차 보조금법을 도입했다. 지난 8월 16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의 ‘인플레이선감축법(IRA)’은 기후변화 대응을 이유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미국에서 제조되지 않은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보조금은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협정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전형적인 ‘수입대체’ 보조금에 해당한다.

 

 

미국에 13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했던 현대자동차로서는 투자계획을 재조정해야 할 것 같다. EU와 한국은 이 법이 WTO 협정 위반이라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했다고 한다. 우리가 WTO 분쟁 절차에 미국을 제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WTO 분쟁제도가 사실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WTO 제소로 이런 편파적인 보조금 입법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조금 경쟁에 뛰어든 국가들이 다른 나라 보조금에 관대한 것만은 아니다. 자국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은 늘리면서도 남이 주는 보조금은 비난하고 엄격히 규제하려는 이중잣대를 적용하기도 한다. EU가 올해 중에 도입하려고 하는 ‘외국 보조금 규정’이 그런 예다.

 

한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반하는 차별적 조치이며 미국 소비자의 전기차 선택권을 제한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 EU, WTO 안 거치고 외국 보조금 제재

EU의 외국 보조금법은 한마디로 외국 보조금 문제를 WTO 분쟁 절차에서 해결하지 않고, EU 집행위가 자체 조사해서 EU가 할 수 있는 제재를 일방적으로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 의하면, EU 시장을 왜곡하는 보조금 수혜기업은 EU 내에서의 생산능력 또는 시장점유율을 감축해야 하거나, 투자 철수 혹은 받은 보조금 반환 등의 조치를 당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EU 기업을 인수 합병하거나 EU 기업과 합작투자를 하는 것이 제한될 수 있고 EU에서 실시하는 공공 조달 참여가 금지될 수도 있다. EU는 WTO 협정 등 다른 나라와 맺은 협약상 의무는 준수하겠다고 했지만, 외국 보조금 문제를 EU 집행위가 조사하고 판단하는 것부터가 WTO 규범을 벗어난 것이다.

 

EU 보조금법의 시행시기는 내년 중반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시행시기가 언제든 간에 5년 전에 지급된 보조금에 대해서까지 법이 소급 적용되기 때문에 외국기업에 미칠 파급효과는 상당한 것이다. 미국의 언론매체 폴리티코는 EU 외국 보조금법의 주된 대상으로 철강·알루미늄 업체, 인프라 업체, 기술 및 에너지업체, 그리고 조선업을 포함한 운송 관련 업체를 꼽았다.

 

이와 관련해 특히 구조조정 보조에 대한 EU의 부정적인 시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U법은 외국 정부가 장기적인 회생 계획이 없는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해 지원하는 행위가 EU 시장을 가장 크게 왜곡한다고 본다. 이는 20여 년 전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과 같은 사례를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자국 우선의 보조금제도 강화 분위기- 우리나라도 적절히 대응해야!

지금까지 미국 EU 등 서방 국가들은 중국의 반시장적 산업보조금을 비난하면서 국제규범과 가치에 기반을 둔 국제경제 질서를 따르라고 말해 왔다. 미국은 같은 생각을 가진(like-minded)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 간의 연대도 강조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WTO 규범을 무시하고 우방국 기업들에 대해서까지 차별적인 보조금법을 쏟아낸다면 자유시장 경제를 신봉하는 국가들의 협력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보편적 가치는 찾을 수 없고, 오직 자국 중심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보조금 경쟁은 자제되어야 하는 이유다.

 

메모리반도체 강국으로 산업 내 패권을 20년 이상 유지해온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의 압박과 중국의 추격을 받는 샌드위치 상황에 접어들었다. 미·중·일 3국의 메모리반도체 수출이 전체 수출의 2%에도 못 미쳐 수출 상품의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14%를 초과하는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수출 의존도는 비정상적으로 높다. 시스템반도체, 장비 및 소재 등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걸친 육성도 중장기적으로 필요하다./ 중국의 자국 산업육성 전략에 대비하여, 후발주자가 따라오기 힘든 초격차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단순히 후발주자의 진입을 막는 하위 전략보다는 경쟁자보다 더 빨리 뛰고 미국의 강점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방안을 통해 자체 산업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신기술 확보 등 초격차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 기업은 기술혁신으로 선점자의 이점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계속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세계 각국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기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보조금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국제 보조금 규범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통상마찰을 우려해 산업 지원에 주저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이제 보조금 정책에서 최우선 판단 기준은 국익,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외국의 보조금 입법에 면밀하게 대응하는 한편, 국제 흐름에 맞추어 우리의 보조금 정책과 관련 제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참고자료; 중앙일보, 관련 기사, 2022.9.13./ 한국경제, 관련 기사, 2022.8.10./ 한국무역협회, 무역통상정보, 관련 기사, 202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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