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필름산업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던 미국의 코닥과 일본의 후지필름의 경험사례를 소개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내용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아날로그필름의 전성기 시절에는 미국의 (이스트만) 코닥, 독일의 아그파필름. 일본의 후지필름 등이 세계 3대 필름회사가 있었는데, 선두주자는 코닥이었다. 2000년을 정점으로 전 세계 필름시장이 연간 20~30%씩 감소해 가자 2005년에 140년 역사의 독일 아그파가 파산하였고, 131년 역사의 코닥은 2012년 1월 19일에 파산 보호 신청을 하였다. (코닥은 이후 2013년 9월 4일에 필름 및 카메라 사업부를 매각함과 동시에 ‘인쇄의 기술적 지원, 전문가들을 위한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기업으로 회생했다).
코닥(Kodak)은 1882년, 뉴욕 로체스터 은행 서기였던 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 1854.7.12.~ 1932. 3.14)이 현대식 필름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내고, 1883년에는 세계 최초의 감광필름을 만들어내, 이것을 양산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10년대부터 필름을 코닥이라고 부를 정도로 필름의 대명사가 될 만큼 회사는 급성장했다. 1950년대에 카메라 시장이, 카메라 바디, 렌즈, 필름으로 세분되어감에 따라 독일의 칼 자이스, 라이카와 일본의 니콘, 캐논, 펜탁스 등이 등장하게 되면서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닥은 필름사업에서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필름 시대가 끝나가는 1990년대 이르렀을 때는 매년 1억 대가 넘는 일회용 카메라를 판매하고, 각종 특허와 디지털 기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는 등 대내외적으로도 큰 성장을 이뤄냈고, 미국 25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1975년 코닥의 전자 사업부 엔지니어였던 스티브 세손(Steve J. Sasson,1950.7.4~)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CCD)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코닥은 이 디지털 카메라가 향후 아날로그 필름 시장 전체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이것에 대한 상용화를 중지시켰으며, 필름 시장의 붕괴를 우려해 가끔 디지털카메라의 시험작 만을 출시하며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을 억지로 늦추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억제 전략은 20여 년간 이어졌지만, 1998년, 디지털카메라의 대중성을 예측한 일본 카메라 기업들이 보급형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필름 카메라는 급속도로 사장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시장 역전에 코닥의 입지와 수익성은 극단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시장에 등장한 디지털카메라는 필름 시장의 최강자 코닥의 사업을 점차 위협하였다. 코닥은 1975년에 이미 디지털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하였지만. 코닥은 전통적인 아날로그 사진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디지털카메라의 사업화에 소극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회사들에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었다. 이후 디지털카메라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2000년대부터 코닥의 실적은 급격하게 나빠졌고 결국 2012년에 코닥은 파산 보호 신청을 하였다. 코닥은 이후 구조조정을 거듭하며 부활을 위한 노력을 했지만, 이미 옛날의 영광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사진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는 시기에 적절한 변화를 못 한 대가는 엄청났다.
반면 똑같은 사진용 필름사업을 하였지만, 일본의 후지필름은 달랐다. 후지필름은 필름사업에서는 코닥을 쫓아가는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디지털 사진의 등장에 후지는 코닥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우수한 디지털 카메라 제품들을 개발하여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도 강자가 되었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 시장의 급격한 하락을 만회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이동전화가 카메라 역할까지 하기 시작하여, 디지털카메라 시장마저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후지필름은 계속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핵심역량을 이용한 다각화였다./ 사진용 필름은 100가지 화학물질이 포함된 20개의 층을 갖고 있다. 이렇게 정밀하게 필름에 화학처리를 하고, 층을 입히는 기술을 활용하여 후지필름은 LCD 패널에 사용되는 필름을 만들었다. LCD 패널은 컴퓨터와 TV의 평면화면으로의 전환, 그리고 이동전화의 성장으로 2000년대부터 엄청난 성장을 하였고, 후지필름은 새로운 시장에 맞는 새로운 제품을 오래된 기술을 활용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후지필름은 심지어 제약과 화장품 시장에도 진출하였다. 사진 필름의 주요한 구성 물질인 콜라겐은 사람의 피부의 70%를 구성하는 성분이기도 하다. 후지필름은 콜라겐에 대한 노하우를 필름이 아니라 인체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이 바래지는 것은 산화작용 때문이다. 후지필름은 사진이 바래지 않게 하기 위한 항산화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주름살 등 피부 노화를 가져오는 것도 산화작용 때문이었다. 후지필름은 항산화 기술을 노화 방지를 위한 약품이나 화장품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좋은 화질의 사진을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에서 얻은 나노 기술을 활용하여 피부에 흡수가 골고루 잘 되는 물질을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사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후지필름은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의료 기기, 의약품, 재생 의료, 화장품 등 헬스케어 사업, 디스플레이 재료 등 고기능 사업, 복합기 프린터와 연계한 솔루션 서비스의 문서 사업 등을 전개하는 다변화 기업으로 완벽하게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후지필름 CEO(최고경영자)가 2000년 사장에 취임했을 당시만 해도 '필름의 시대'가 그렇게 빨리 종말을 고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디지털카메라 보급으로 필름이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은 1980년대부터 나왔지만, 필름은 당시 최고의 '캐시카우(cashcow) 즉 현금 수익 창출원이었다.
2003년 CEO로 승진해 경영 전권(全權)을 쥔 고모리 시게타카 사장은 달랐다. 먼저 경영 목표를 '세계 1위 코닥 타도'에서 '탈(脫)필름 구조조정'으로 바꿨다. 그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모두 직장을 잃는 사태가 온다"라며 임직원을 설득하며 필름 분야를 과감하게 축소했다. 2004년 제2의 창사(創社)를 선언하며 2000억 엔(당시 환율 기준 약 2조 원)을 들여 필름 공장 폐쇄, 판매·유통망 정리, 인력 감축(2006년까지 총 5000명) 등을 추진했다.
또한, 사업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과감한 신기술 연구 및 개발(R&D)을 강화했다. 2000년부터 약품 회사인 도야마(富山) 화학공업(2008년), 미국의 초음파 진단 장비 제조업체 소노사이트(2011년) 등 약 7000억 엔을 들여 40여 개 회사를 인수·합병(M&A)했다. 일본 기업으로선 보기 드문 신속한 의사 결정과 과감한 추진력이었다. M&A 원칙도 "본업과 무관한 분야는 절대 진출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필름 개발 과정에서 연구해 확보한 10만 점이 넘는 화학물질 등 기존 기술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확장을 시도했다. 후지필름의 신사업인 '아스타리프트'(ASTALIFT)’라는 화장품은 필름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콜라겐'을 인간의 피부에 적용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투명성과 얇은 두께, 균일한 표면을 유지해야 하는 필름 기술을 활용해 후지필름이 전자소재(電子素材)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LCD 패널의 시야각(視野角)을 확대하는 필름 분야는 후지필름이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10년 동안 끈질기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끝에 후지필름은 이제 의료기기와 제약, 전자소재, 화장품 회사로 탈바꿈하였다.
고모리 시게타카는 위기 타파를 위한 혁신 활동을 절대로 질 수 없는 전력을 건 싸움 즉 ‘혼의 경영’이라고 칭했다. 1963년 후지사진필름(현 후지필름홀딩스)에 입사하여 57년간 몸담고 있다. 2003년 대표이사 사장 겸 CEO에 취임했고, 2012년부터 대표이사 회장 및 CEO를 맡고 있다.‘철저한 구조 개혁’, ‘새로운 성장 전략 구축’, ‘연결 경영 강화’의 3대 개혁 방침을 내세워 후지필름의 혁신을 추진했다.
‘후지필름 혼의 경영’이라는 책은 플리토 전문번역가그룹이 번역한 책으로, 고모리 시게타카 최고경영자가 후지필름 홀딩스 지주회사를 새롭게 변혁을 시켜서 전 세계의 글로벌회사로 만든 후지필름 전문경영인의 저서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새롭게 유를 창조해내기 위해서 “혼을 담아 전심전력”을 기울였고, 새롭게 디지털 시대로 변화를 선도하기 위한 후지필름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즉, 미래를 위한 구조조정은 더욱더 신속하게, 그리고 빠르게 하고, 이길 수 있는 사업이 아닌, 계속 이길 수 있는 사업을 선택하라고 강조한다. 또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R&D와 M&A가 중요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력”즉(현장을 이해하는 능력)이며,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업이 목표라고 강조하였다.
앞으로 한국인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은 한국에서의 안주가 아니라, 적극, 외향, 상향으로 바꾸고 다시 한번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서 열심히 경쟁하고 싸울 의지를 되찾는 것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계속해서 굴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서 반드시 성취하고, 강하게 실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왜 같은 사진용 필름 회사로 출발하였지만, 코닥은 처참하게 무너졌고 후지필름은 계속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코닥은 자신이 잘 하는 것이 사진 사업이라고 생각을 하였고, 거기에 집중하였다. 잘 하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사고 자체는 좋았다. 문제는 코닥이 자신이 해온 사업모델인 사진용 필름사업을 자신의 핵심역량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러자, 잘 할 수 있는 시장은 사진 시장뿐만 되게 되었다.
반면 후지필름의 시각은 달랐다. 사진용 필름사업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쓰이고 있는 자신의 기술들을 핵심역량으로 파악하였다. 물론 익숙한 사진 사업과 달리 LCD용 필름이나 제약, 화장품 사업은 새로운 역량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기술이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시장이 있음을 확인한 후지는 효과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현재하고 있는 사업모델이 핵심역량과 항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환경변화를 주시하면서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다시 한번 요약해서 보면, 코닥은 파산하고, 후지필름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기업은 망하고 항상 급변하는 환경변화를 주시하면서, 끓임 없는 혁신과 노력으로 품질과 생산성을 향상시켜 나가는 기업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찰스 다윈이 이야기 한 대로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지능이 높은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라고 했는데, 경영에도 적용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 다음 유튜브; 이춘근방송 54회차를 참고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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