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호화폐거래소 시장에서 업비트(UPbit) 독주 시대가 열리고 있다. 불과 3년 전인 2018년 당시 부동의 1위였던 빗썸(bithumb)을 처음으로 추월한 뒤 최근 격차를 5배 이상으로 벌렸다. 업비트를 비롯해 극소수 거래소들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아지면서 거래소의 독과점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가상화폐거래소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에 따라 다음 달 9월 24일까지 금융위원회에 등록하지 않으면 사실상 폐업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도 업비트는 국내 거래소 가운데 최초로 요건을 갖춰 신고하는 데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업비트가 공동창업자들과 카카오가 협업하는 안정된 지배구조를 통해 각종 시스템에 투자하면서 경쟁력을 갖춘 반면에, 2위 빗썸은 복잡한 지배구조 등으로 서버 다운 등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요인이 크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업비트(케이뱅크)를 제외하고 은행 실명계좌 계약을 맺은 곳은 빗썸(NH농협은행), 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등 3곳에 불과하다.
8월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거래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업비트의 지난달 말 이용자 예치금 잔액은 5조2678억원으로 2위 빗썸(1조349억원)의 5.1배에 달한다. 3, 4위 거래소인 코인원(2476억원)과 코빗(685억원)을 합쳐도 업비트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예치금은 이용자들이 가상화폐를 거래하기 위해 거래소에 넣어둔 돈을 의미한다. 업비트 예치금만 4대 거래소 예치금의 80%를 차지한다. 업비트는 이용자도 대거 흡수하고 있다. 7월말 기준 업비트 회원 수는 470만5721명으로 빗썸(130만6586명)의 3.6배에 달한다.
실적에서도 큰 격차가 있다. 업비트는 지난 1분기 영업이익으로 5440억원을 벌어들였지만 2위 빗썸은 2502억원으로 업비트의 절반에 그쳤다./신규 가입자도 업비트에 집중되고 있다. 4월부터 지난달까지 석 달간 업비트 신규 가입자는 177만5561명으로 같은 기간 빗썸(45만175명), 코인원(17만1446명), 코빗(4만4864명)을 합친 수보다 2.6배 많았다. 업비트 거래량은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암호화폐 시황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8월 29일 오후 2시 기준 업비트 거래액은 12조1235억원으로 빗썸(1조1667억원)보다 10배 이상 많다.
한편 가상화폐 열풍에 10대도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4대 거래소에 따르면 10대 이용자가 이곳에 예치한 금액만 4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4~7월 업비트에 가입한 10대 이용자는 모두 2만8164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4개월간 193만2077회를 거래했다. 10대 이용자 1명당 4개월간 68.6회로, 한 달 평균 17.2회 거래했다는 의미다. 예치금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30대로 4대 거래소를 모두 합쳐 2조245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어 40대(1조7422억원), 50대(1조185억원), 60대(3735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업비트와 빗썸은 작년 초까지만 해도 엎치락뒤치락하며 1위를 다투었다. 업계 관계자는 “2018년 초 코인 급락장에서 빗썸 서버가 잠시 마비된 영향으로 당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불만이 터지면서 사고가 없었던 업비트가 상대적으로 이익을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9년 11월 업비트에서 당시 기준으로 1260억원어치 암호화폐가 유출되는 해킹 사건이 터지며 지난해 초까지 빗썸이 다시 1위로 올라섰다./ 업비트는 작년 6월 빗썸을 다시 역전했다. 이후 빗썸이 지난달 기준 사용자 수를 82만 명 늘리는 동안 업비트는 419만 명을 확보했다. 업비트가 이처럼 2위 그룹과의 격차를 급격하게 벌린 것은 ‘안정된 지배구조’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있다.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는 공동창업자인 송치형 의장과 김형년 부사장이 각각 25.4%, 13.6%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사업 초창기부터 두나무에 투자한 카카오와 계열사들은 총 21.3%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가 업비트 최고경영자(CEO)로 나서 두나무와 카카오의 협업체제를 굳히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빗썸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업을 주도할 오너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일이 잦았다.
업비트 성장 이면에는 ‘무더기 코인 상장’ 영향이 한몫했다는 비판도 있다. 현재 업비트에 상장된 코인은 147종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업비트가 2017년 코인을 무더기 상장하면서 거래량을 늘리자 다른 거래소들도 이를 따라가면서 사기성 짙은 ‘잡코인’들이 판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발표에 따르면 시중 가상자산(가상화폐) 거래소 63곳 가운데 24곳은 7월 말 기준 사업자 신고 필수요건 중 하나인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신청하지 않았다. 당장 ISMS 인증을 신청해도 사업자 신고 기한인 9월 24일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폐업 가능성이 높다.
금융 당국이 제시한 등록 요건은 ▲인터넷진흥원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운영 ▲사업자(대표·임원 포함)에 대한 벌금형 이상 형벌의 집행이 끝난 지 5년 초과 ▲등록 말소 후 5년 초과 등 네 가지다. 여기에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은 비록 직접적인 신고 요건은 아니지만 어차피 등록 이후 관련 의무를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 당국의 사전 심사를 거치도록 규정했다.
다른 거래소들의 사업자 신고가 불투명해져 이 같은 ‘초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4대 거래소 가운데 업비트만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해 당국에 신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2·3·4위 거래소인 빗썸과 코인원, 코빗은 실명계좌 계약을 확보하지 못해 신고가 불투명하다. 빗썸, 코인워, 코빗은 개정된 특금법에 따라 ‘트래블룰(코인 이동 시 정보 공유 원칙)’에 대응 할 합작 법인 설립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트래블룰은 코인을 옮길 때 송·수신자의 이름, 가상자산 주소 등을 제공하도록 한 규정으로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 적용될 예정이다. 업계는 업비트 독주체제가 굳어질 경우 독과점에 따른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 최근 국내에서 영업 중인 암호화폐거래소는 총 60여곳으로 파악된다. 9월 25일 이후에는 이 중에서 상당수 폐쇄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가상화폐거래소에 거래되는 가상화폐 수는 너무 많다. 선진국의 암호화폐거래소는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해서 개발된 암호화폐만 유통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어 이른바 우리나라에서만 거래되는 가상화폐인 김치코인들이 많이 있다. 이들 김치코인들은 옥석을 가려 상당수 폐지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선의의 투자 피해자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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