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발렌베리 가문이 거론되어온 것은 무엇보다도 발렌베리 가문 소유 기업들의 소유지배구조가 한국 재벌그룹 소유 기업들의 소유지배구조와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재벌과 발렌베리 그룹이 어떤 점에서 유사한 가를 보겠다.
첫째, 발렌베리 가문과 한국의 주요 재벌 가문 모두 산업과 금융 부문에서 많은 기업을 포괄하는 거대 산업-금융그룹으로 발전시키고 유지해왔다. 둘째, 양자 모두 가문의 소유지분에 비해 훨씬 큰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 그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는데, 발렌베리 가문의 경우엔 주로 피라미드형 소유 지배구조와 차등의결권 주식제도를 활용해왔고 한국의 재벌 가문들은 주로 순환출자를 활용해왔다. 셋째, 소유기업들의 경영을 가문 구성원들이 총괄적으로 책임져 왔다. 양자 모두에서 전문 경영인의 역할도 중요하고 특히 발렌베리 가문의 경우 전문 경영인의 권한이 한국 재벌기업들에서보다 한결 더 컸지만, 핵심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은 가문 수장(首長)들이 주도해왔다. 넷째, 양자 모두 단기적 수익보다는 기업들의 장기적 성장을 중시하여 기업들이 일시적으로 경영위기를 겪을 때도 기업을 매각하기보다는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과감한 전략적 투자를 감행하는 ‘적극적 소유주(active owner)’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재벌과 발렌베리가문과의 차이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발렌베리 가문 소유기업들은 모두 상장 기업들이고, 각기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재벌기업들처럼 비공개 자회사에 투자한 다음 이를 주식시장에 상장해 막대한 차익을 누리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째, 발렌베리 왕국의 컨트롤 타워인 지주회사 인베스토르는 상장기업이지만 삼성그룹의 과거 컨트롤 타워인 삼성그룹구조조정본부는 해체되었지만, 법적인 실체가 없었다.
셋째, 발렌베리 가문의 전문 경영인들은 권한이 막강하지만, 대부분의 재벌그룹과 같이 삼성의 경우도 과거 이건희 회장의 ‘황제경영’이 지배해왔다.
넷째, 발렌베리 가문 구성원들은 소유기업들의 경영에 참여하기 위해 기업들의 이사회에 이사로서 공식적으로 참여하지만, 삼성 이건희 회장의 공식 직함은 오직 삼성전자 회장뿐 이다. 그러나 그룹 전체의 의사결정을 주도해왔다.
다섯째, 발렌베리 그룹의 기업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그룹’이 아니다. 모두 각기 독립된 기업들이고, 기업명도 모두 다르며 기업들 간에 막연한 연대의식이 있는 정도다. 반면에 삼성그룹의 계열사 간에는 공동운명체 의식이 강하고, 순환출자를 통해 실제로도 그렇게 경영되어 왔다.
여섯째, 발렌베리 가문이 활용해온 차등의결권 주식제도는 삼성그룹이나 SK그룹 등 대부분의 국내 재벌이 활용해온 순환출자와는 달리 그룹 전체를 공동운명체로 만드는 효과가 없다.
일곱째, 발렌베리 가문은 노동조합을 존중하고 노동조합과 긴밀히 대화해 왔지만, 과거 삼성은 무노조 경영으로 일관해 왔다. 물론 작년 삼성은 노조를 인정했다.
여덟째, 발렌베리 가문은 여러 재단을 통해 수익의 사회 환원에 적극적이었지만, 국내 재벌은 그렇지 않고 흉내만 낼 뿐이다.
여덟째, 발렌베리 가문의 경우 재단을 정점에 두는 피라미드형 소유지배구조로 인해 소유기업들의 성공과 가문 구성원들의 개인적 축재 간에 상관관계가 약하다. 소유기업들의 이윤 일부는 배당수익으로 인베스토르로 흘러 들어가고 인베스토르의 이윤 일부는 배당수익으로 발렌베리 재단들로 흘러 들어가지만 발렌베리 재단들은 공익재단인 관계로 재단들의 수익이 가문 구성원의 수중으로 흘러 들어가지는 않는다. 가문 구성원의 주식 보유 규모도 크지 않다. 그러나 국내 재벌들은 그렇지 않다.
아홉째, 발렌베리 가문은 재단을 통한 이윤의 사회 환원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해왔다. 탈세나 차명계좌 활용과 같은 불법적, 편법적 행위와도 거리가 멀었다. 반면에 한국의 재벌 가문들은 가문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쥬와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여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재벌이 개혁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발렌베리 왕국의 실질적인 주인은 가문의 후계자들이 아니고, 발렌베리 재단이라고 할 수 있다. 160년 동안 일군 부의 대부분을 3개의 발렌베리 재단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렌베리 후계자들의 재산은 50-200억원규모로 우리나라 재벌 2세들이 갖고있는 1조원규모의 돈과는 비교할수 없을 만큼 적다. 그리하여 발렌베리가 스웨덴의 최고부자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 스웨덴의 최고 부자는 가구회사 이케아를 소유한 잉바르 캄프라드다. 하지만 그는 스웨덴의 다른 부자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세금을 피해 스위스로 옮겨가 살고 있다. 또한, 액체 포장용 종이팩인 테트라 팩을 만든 루빈 라우싱 가문은 1980년대 스웨덴의 높은 세율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반면 발렌베리가문은 스웨덴에 남아 자신들이 일군 부를 공익재단에 기부해 사회에 환원하는 길을 선택했다.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철학은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한다. 발렌베리 가문이 세계 1,000대 부자 명단은 물론 스웨덴 100대 부자 명단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재단 이익금의 80%를 사회에 환원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가 새겨볼 이야기이다.
참고; 유튜브; 이춘근방송 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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